작성일 : 22-05-17 20:30
아들과 단식원에서
글쓴이 :
고월 김창…
조회 : 2,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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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한방단식원
열흘간의 만남 (1/2)
인천공항 국제선 출구 D번 게이트에서, 나는 1시간 넘게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이며 내 하나뿐인 자식을 기다립니다. 3년 하고도 1개월만입니다. 나는 3년 넘게 아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내게는 참 잔인한 시기였습니다.
초조하게 게이트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나는 마침내 아이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는 한 걸음에 달려 아이에게로 갑니다. 나는 환하게 웃고있는데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꿈 속에서는 매일처럼 밤마다 보아왔건만 눈을 뜨면 무기력과 회한만 남긴 채 뜬금없이 사라지던, 그런 환영이나 신기루가 아니라 진짜로 만지고 얼싸안고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내 새끼를 만납니다. 이제는 서른 여섯, 그래도 내게는 아빠, 아파, 아빠빠 하는 애기같은 그 아이 볼에 뽀뽀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 꿈 속에서의 그 아이, 내 기억 속의 그 아이와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속으로 사무치게 놀라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합니다... 아이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아빠와 엄마 손을 나란히 붙잡은 채 공항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옵니다.
속으로 나는 수심에 가득합니다. 얼마 전 딸을 낳았는데 벌써 둘째를 가진 건가?
배의 크기로 보아, 만삭에다가 아무래도 쌍둥이 같습니다. 불거진 배를 안고 뒤뚱거리며 걷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가슴이 저며옵니다. 반가움은 잠시, 걱정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내 외동 아들의 배는 물을 잔뜩 집어넣은 풍선처럼 출렁입니다. 3년 1개월 동안 대체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이의 피부도 나쁘고 몸에는 알레르기 성 버즘이 빼곡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저녁, 나는 가족들과 맥주를 한 잔 합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아들에게 의향을 묻습니다. 얘, 아빠하고 단식 한 번 다녀오지 않겠니? 아들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아들은 나와 함께 단식을 예닐곱 차례한 경험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했던 단식은 그야말로 고행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아니, 아니, 그런데하고는 달라. 이렇게 운을 떼고 나서 나는 “젠한방단식원”에 대해, 내가 가진 모든 진심을 쏟아 설명을 합니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단식을 했습니다. 안그랬다면 서른 전후로 아마 이 생을 접었을 것입니다. 혼자서도하고 교회에서도 하고 절에서도 하고 단식원에서도 하고, 삼십일도 하고 보름도하고 닷새도 하고,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고, 극적으로 병을 치료하기도 하고 오히려 몸을 망가뜨리기도 하고, 아내와도 같이 하고, 친구하고도 같이하고, 아들과도 같이 하기도 하면서 근근 아마 칠십여차례 이상 했을 겁니다.
근데 말이야, 아들아, 여기는 네가 했던 데랑은 달라. 나도 이런 데가 있는 줄 글쎄 몰랐잖니? 내 말을 곰곰히 듣던 아들의 입에서 뜻 밖의 소리가 흘러 나옵니다. 예, 아빠, 갈게요…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선뜻 함께 나서겠다는 녀석이 대견하기까지 합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있는 날이 얼마 되지 않는 데 그 중에 열흘을 단식을 하겠다고하니 내가 그리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단식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아이가 돌아간 후에 얼마간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출발선에 설 예정이었죠. 달리기 선수가 몸도 풀지 않은 채 출발선에 아들과 함께 나란히 섭니다. 그래, 너만 성공하면 된다. 나는 따까리 할 게. 나는 너 금메달 따게 하기 위해 뒤에서 쫒아오는 일본순사놈 다리 붙잡고 넘어질게. 가자! 우리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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